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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원대 자원봉사단 1진, 진도 세월호 사고 구호본부에서 봉사활동 개시
작성자 홍보실
내용

 

       < 수원대 자원봉사단 1, 진도 세월호 사고 구호본부에서 봉사활동 개시 >

 

  이인수 총장은 이번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자, 19() 세월호 사고구호 본부 지원을 위한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소집하여 대학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였다. 

  논의결과, 대학에서 수업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스스로 지원하는 교수, 직원, 학생 자원봉사단을 공고로 모집, 진도 세월호 사고구호 본부현장으로 파견하여 봉사활동을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인수총장은 먼저 교직원 2명을 진도 사고구호 본부현장에 파견하여, 세월호 사고 구호본부에 대학 측의 지원의사와 봉사단 파견을 확정지었으며, 학교에서 이에 적극 지원하도록 하였다. 

  20() 오전 9, 관계 처, 실장과 부처 간의 지원 대책과 봉사지원에 대한 세부논의를 거쳐, 세월호 사고 구호본부 현장이 철수하는 날까지, 우선적으로 매 팀당 1 2일간씩, 1팀에서 20팀까지 파견할 것을 결정하고, 21() 오전 모든 일정이 확정되어 홈피에 공고함과 동시에 자원봉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인수총장은 “세월호 사고 구호본부 현장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함으로서 국민의 고통과 슬픔에 동참하고 교육자와 대학생으로서 직접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과 시련을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참 교육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2014 4 22()오전 10, 수원대 교직원, 학생 자원봉사자 25명이 진도 세월호 사고 구호본부 현장으로 출발하였다. 버스 안에서는 봉사활동에 대한 주의사항만을 당부하고 일체의 개인 활동을 자제하고 현장 사진을 찍지 않고, 말없이 봉사활동만 할 것이라는 의지를 다지면서 모두 침묵을 지키면서 사고현장으로 몸을 실었다.

   오후2 30, 버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류가 세다는 울돌목의 다리를 건너자 이순신장군의 명랑대첩 승전지가 보였다. 찬찬한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수원대 자원봉사단들은 초연하고도 굳건한 봉사의지를 다졌다.

   진도 체육관에 도착하자, 깊은 고요와 적막함, 그리고 쓸쓸함이 배어나왔다. 가끔씩 오가는 구호물품 적재트럭과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오가는 대형버스만이 조용히 움직일 뿐 여기서는 세월이 멎은 곳이었다. 이곳 현장에는 크나큰 슬픔과 고통을 넘어서야 만이 만날 수 있는 깊은 침묵이 흐를 뿐이었다

   구호본부 현장 주위 어디를 살펴보아도 “무사귀환을 기원한다.”는 현수막이 보이지 않았고, 오직 “힘내세요.”라는 글귀로 대체되어있었다. 현장주위에는 사회각계각층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전라남도 자원봉사센터장이 현장의 모든 봉사활동지원자를 총괄 지휘하였다.

   불교조계종, 원불교, 천주교, 교회 종교단체, 안산시 자원봉사센터, 새마을 회, 사랑의 열매, 사랑의 밥차, 로타리, 라이온스, 진도 청년회의소 등 각계 사회봉사단체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각계각층의 사회단체 어디를 둘러봐도 대학교에서 자원봉사단체는 없었다. KBS TV PD는 사고 첫날부터 당일까지 그곳 현장을 지켰지만, 대학교에서 파견된 자원봉사단체는 수원대학교가 처음이라고 했다. 이에 수원대 자원봉사단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고, 마음 적으로는 실종자 가족 분들에게 아무런 위로를 주지 못하므로, 모두가 혼신을 다해서 봉사하겠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진도 세월호 사고 본부 현장에는 세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인양작업이 완료되어 들어오는 팽목항, 전국의 구호물품이 도착하는 진도향토문화회관, 실종자 가족들이 거처하는 진도 체육관이다.

   팽목항은 재난방재센터, 재난구호기관, 의료진, 해경잠수부 등이 주재하며, 소방헬기와 군용 헬리콥터소리가 끊이지 않아 이곳 상황의 심각함을 전했다.

   진도 향토문화회관에서는 전국각지에서 밀려드는 구호물품을 물류창고에 보관하는 작업과 사고본부 실종자 가족에게 전달하고 잠수부, 사고현장 구호 자들에게 보내는 물품들로 쌓였다.

   수원대 자원봉사단은 전남 자원봉사센터의 지휘를 받아, 팽목항, 향토문화센터, 진도 체육관에서 봉사활동을 전개하였다.

   수원대 자원봉사단은 오후3시 현장에 도착하여 주변청소, 식사배식, 설거지, 구호물자 하역작업, 구호물자 운반, 부식운반, 쓰레기 분리수거, 구호물품 출납기록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많은 자원봉사단체가 물러간 저녁 10, 수원대 자원봉사단 1진은 전라남도 봉사센터 이성태사무국장의 지휘아래 야간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성태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조난 사고 후 첫날 300, 2일째 500, 3일째 1,500, 4일째 2,000, 5일째 3,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전국각지에서 왔다. 자원봉사 지휘본부에서는 6일째부터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접수를 받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봉사단을 선발하였다. 그러므로 오늘 선발되어 여기에 오신 봉사자 여러분들은 자원봉사자의 정예 중의 정예라고 생각한다. 일반 사회봉사단체보다 젊고 앞으로 장래가 촉망한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사회를 아름답고 밝게 이끌어갈 좋은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선발한 것이다. 부디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을 깊이 헤아리는 심경으로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의 경험이 앞으로 여러분의 인생에 많은 힘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12시가 넘자, 이곳의 온도는 영상 8도를 가르치고 있었고,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이 더해져서 한겨울 매서운 추위보다 마음의 추위가 더욱 시린다는 것을 실감케 해주었다.

   특히, 지금 실종자들이 차가운 물속에 잠겨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바다물속에서 견디고 있을 어린 학생들이 떠올라 말 못할 추위가 더욱 엄습하였다. 그리고 날씨의 추위보다는 곁에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는 그 무기력함이 마음의 추위로 다가와서 더욱 마음이 찹찹해졌다.

   수원대 자원봉사자들은 도와줄 일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보아도 도와줄 일이 없다는 것이 봉사자로서 정말 힘든 일이었다. 여기서는 모든 사회 봉사단체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잘 처리하고 있으므로 별로 뒤처리 할 것이 없었다. 그래도 수원대 자원봉사단은 사고대책본부에서 무거운 짐을 운반하거나, 화장실 청소, 쓰레기 수거 등 아무리 힘든 일을 마다않고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최선을 다했다.

   실종자 가족 또한 실내체육관에서 피곤한 육신을 나눌 길이 없어 거의 움직임이 없어 넋을 놓고 무감각, 무표정으로 TV의 현장소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화장기 하나 없는 민얼굴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서 인지 모두가 두 눈이 퉁퉁 부어있었고, 얼마나 많은 울부짖음을 하였는지 더 이상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유일하게 큰 소리가 들린 것은 새벽 230분 실종자 가족 한분이 시신인양착오로 인하여 시신이 바뀌었다면서 시신 확인소 현장에서 30분간 울분과 고함소리가 전체 체육관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그 많은 실종자 가족은 단 한사람도 움직임이 없었다. 실로 사고 구호본부에서 24시간동안 머물면서 처음 듣는 고성이었다. 크나큰 아픔을 지닌 실종자 가족 분들에게 이런 장면은 너무 익숙하여 모든 것을 무덤덤하게 그 모습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수원대 자원봉사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팽목항에서 어느 실종자 어머니가 다른 실종자 가족에게 “아들 시신을 찾아서 너무 고맙다. 곧 돌아올 것이니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되려 위로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눈물겨워 차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아픈 말이다.

  시신을 찾은 것만으로 고마워해야하다니. 

  자식을 잃은 실종자가족들에게는 “자식 생각뿐 모든 감각을 잃은 분”들에게 어떤 위안이나 위로가 될 수 없음을 느끼면서, 단지 마음으로 만이라도 그들과 함께 슬퍼하고 위안하며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왔다.

   고요함과 적막함이 흐르는 진도 사고현장 구호본부에서는 자신을 초월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스스로 발로 뛰는 대학생들의 모습에서 수원대학교의 미래가 밝다는 것과 대한민국이 슬픔을 이겨내고 발전하는데 이번 사건이 큰 힘이 될 것으로 믿어본다. 

  23() 9, 버스가 대학본부로 도착하였다. 출발한지 총 35시간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일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기도 하고, 가장 짧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수원대 자원봉사자들은 저마다 굳은 각오로 단원고 학생들은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라”는 학교에서 내 준 숙제를 반드시 해 와야 한다는 간절한 당부의 마음과 함께, 가족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봉사활동기간 수원대봉사단은 이번 봉사활동기간 일체 사진촬영과 핸드폰 문자전송을 금지하고 심지어는 서로간의 대화도 자제하면서 말없이 봉사에만 충실하였지만, 오늘 방송매체에는 벌써 수원대 자원봉사단의 발자취를 이렇게 보여준다.

 

                              < SBS 8시 뉴스 화면  >                      

                             < 채널 Y 뉴스 보도 >                       

                      < 경인 일보 신문 보도 >          


           

  < 뉴시스 신문 보도 >          
 

  종이 울리기 전까지는 종이 아니듯이, 사랑을 주기 전까지는 사랑이 아니라는 단순한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뜻 깊고 가슴 아픈 봉사활동이었다.

 

  * 세월호 탑승자들 가족 분들에게 깊은 마음의 위로를 보냅니다.

 

 

등록일 2014.04.24 14:15:48 조회수 2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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